사용자를 멍청하게 만드는 도구
최근 나온 최신 인터페이스의 컴퓨터 운영체제나 전통적인 의미에서 컴퓨터로 수행했던 기능들을 대신하게 된 전자기기들 -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포함하는 - 은 정말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자랑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이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인터페이스는 더 발전해서 인간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터페이스가 발전할수록 사용자들은 기계 그 자체가 아닌 기계의 목적에 주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이메일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 편리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메일을 쓰기 위해 복잡한 과정,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아니 적어도 이메일을 사용하기 위해 복잡한 메일 서버 세팅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런 단순한 진리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와 그것이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방식인 인터페이스는 최근에 와서야 그 기술들이 목적한 바를 기술적 문제에 대한 우려 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느끼고 있다. 십년 전, 한창 컴퓨터와 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되고 있을 무렵에 컴퓨터에 대해 주위에서 많이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옛날에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거의 다 컴퓨터를 잘 다루었고 고장이 나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고칠 수 있었다. 그런데 컴퓨터가 많이 늘어나고,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조악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소프트웨어들에 지친 사람들이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컴퓨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복잡한 명령어들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한 책을 한 권 읽어야 했다. 그나마 MS-DOS라는 운영체제가 나왔던 시절이 내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시절이라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 어린이들을 위해서 쉽게 쓰여진 - 미국의 한 중학생이 쓴 - 윈도우 3.1용 입문서를 읽었다. 매달 정기 구독하는 잡지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접했다. 그래서 컴퓨터를 어느 정도 사용할 정도가 되었다.
분명한 차이점은 인터페이스가 뛰어난 기기라면 위의 과정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아이폰을 사용하기 위해서 두꺼운 메뉴얼을 봐야 하는가? 물론 아이폰도 세부 기능이나 기본적 사항들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복잡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닌텐도 게임기, 아이패드 등 새로운 전자기기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사용자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번잡스런 설정이나 학습의 과정 없이도 전자기기를 통해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그 효율성의 정도에 대한 것이다. 과연 얼마나 효율적인가?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무장한 기기를 접하는 순간부터 사용자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은 곧 멍청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처음에 리눅스를 설치할 때 나는 ADSL카드를 인식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고민을 했다. 내장형 랜카드의 제조사와 칩셋 이름도 알아야 했고 리눅스가 켜지는 과정에서 자동으로 인터넷에 연결시키기 위해서 리눅스의 부팅 과정도 기초적인 수준이나마 공부해야 했다. 각종 네트워크 관련 명령어들도 익혀야 했다. 내 리눅스 머신과 아이폰을 비교해 보자. 아이폰이 수십, 수백, 수천 배는 더 효율적인 도구일 것이다. 그러나 그 효율성의 정도에 대해 고민을 해 본다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최신의 배포판은 인터페이스에 많은 신경을 썼지만 예전의 리눅스는 GUI를 보기 위해 정말 손이 많이 갔다. 이런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면서 사용자는 OS의 구조를 이해하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소통하는 방식을 이해한다. 이를 이해한다면 관심은 OS를 더 자신에 맞게 바꾸는 작업으로 옮겨간다. 자질구레한 설정들을 건드리다가 커널 컴파일을 해서 자신의 PC에 최적화된 OS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고,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이것이 불편하지만 확장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진 운영체제가 사용자를 똑똑하게 만드는 과정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편한 인터페이스, 즉 기계가 사람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 사람이 기계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자의 두뇌는 기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편리한 인터페이스는 사고의 확장과 개방성, 그리고 발전 가능성을 제한한다. 인터페이스가 편리하다는 것은 사용자가 설정할 부분이 적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교한 조작이나 조작 방식 자체에 대한 수정은 염두에 두지 않고 개발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은 사용자를 멍청하게 한다.
분명 편리한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최신형 컴퓨터가 나왔다고 하자. 이 컴퓨터는 사용자가 뭘 설치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자기 관리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바이러스가 감염되었다. 악의적인 바이러스가 컴퓨터에 대한 통제를 장악했을 때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기껏해야 본체를 떼어 들고(혹은 하드디스크를)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거나 수리기사를 부르는 일이다. 만약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면 혼란은 커질 것이다. 컴퓨터가 생활에 필수적이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거의 모든 사람이 컴퓨터 운영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면 재앙이 될 것이다.
예전에 쥬라기 공원이라는 공상과학 소설을 쓴 마이클 크라이튼이라는 작가의 작품 중 <콩고>라는 작품이 있었다. 유인원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소설이었는데 현재 실제로 유인원이 수화를 배워서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대목에서 등장 인물 중 한 사람이 말한다. "그들이 우리의 말을 배워서 (수화로)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보한 종입니까?" 나는 어느 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기계는 우리를 이해하지만 우리는 기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뛰어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