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ce Blub's Island

얼마 전 애플의 창립자이자 CEO인 스티븐 잡스가 구글과 어도비에 대한 비판을 했다. 애플의 신제품 아이패드가 플래시 지원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플래시 자체의 문제점을 꼬집었으며 구글의 모토인 '악해지지 말자'는 헛소리(bullshit)라고 단정지었다고 한다. 이 뉴스를 보고 애플과 구글, 그리고 애플에 자주 비교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몇 가지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애플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플랫폼에 대한 대안 또는 독점 체제에 대한 저항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액티브X와 같은 마이크로소프트만의 기술에 대한 비판에서 더욱 그러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윈도우즈 운영체제의 단점들 - 불안정함과 취약한 보안성 - 은 자주 애플의 OSX와 비교되곤 한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맞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내 인터넷 시장, 그리고 애플이 선전하고 있는 휴대전화 시장은 너무도 폐쇄적이어서 애플이 우리 나라 시장에서 인기를 끌 경우 그 폐쇄성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애플 아이폰의 인기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상당 부분이 '표준'과 '반독점', '성능'이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 대한 공격적 마케팅의 수단에 의해 재창조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윈도우즈는 불안정하다'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경험상 윈도우즈가 불안정해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던 버전은 윈도우즈Me 였으며 초기 버전이었던 95, 98 역시 그다지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과연 윈도우즈가 지금도 불안정한가? 2000과 XP에 이르러 그 안정성은 크게 향상되었고, 비스타와 7은 매우 안정적이다.

윈도우즈 시리즈에 대한 또다른 변명은 윈도우즈는 '어느 컴퓨터'에서나 돌아간다는 점이다. 좀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닌텐도 위(Wii)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새로 나온 슈퍼 마리오 게임 타이틀을 사면서 '이게 내 위에서 돌아갈까?'라는 걱정을 하는 경우는 없다. 위 게임기는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PC에서 게임을 하려는 사람은 걱정을 해야만 한다. CPU와 그래픽카드, 메모리, 때에 따라서는 하드 디스크 용량 등에 의해 게임을 즐기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자들은 '지금 우리가 만드는 윈도우가 어떤 사양의 컴퓨터에서는 돌아갈 것일까'라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운영체제를 개발해야 한다. 반면 애플의 오에스텐은 적어도 그러한 걱정은 '많이'할 필요가 없다. 애플은 오에스텐을 자사의 하드웨어와 분리해서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의 개발자들은 예측가능한 환경에서 구동되는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자들은 '대충 정해진 범주 내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유추해볼 수 있는 사실은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 못지않게 폐쇄적인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는 애플의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하다. 애플은 폐쇄적이지만 사용자가 불편 없이 쓸 수 있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제공되는 사용자 경험을 판매하려고 한다.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하고 아이튠즈로 음악을 받아 아이팟으로 음악감상을 하고, 아이맥이나 아이북으로 인터넷을 하며 아이팟에 음악을 넣는다. 사용하기에는 매우 편리하다. 유일한 단점은 모두 애플 제품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소비자가 애플 오에스텐을 사용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애플은 단순히 오에스텐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자사의 데스크탑 또는 노트북, 나아가서는 애플의 컨텐츠와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진 사용자가 추후에 구매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판매 가능성까지 묶어서 판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윈도우즈를 사용하기로 선택한 사용자는 수 없이 많은 결정을 더 내려야 한다. AMD의 프로세서인가, 인텔을 사용할 것인가? 램은 삼성, 하이닉스, 아니면 기타 외산을 사용할 것인가? 메인보드에 어떤 기능이 있는, 어떤 칩셋을 사용한 제품을 사용해야 할까? 케이스는 어떤 것이 싸면서 보기도 좋을까? 그러므로 '종속성'과 '폐쇄성'측면에서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낫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이에서 소비자가 선택해야 할 것은 더 자유로운 선택인가, 아니면 걱정 없이 사용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두 기업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가진 기업이며, 다른 목표와 패러다임을 가진 두 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은 전혀 다른 제품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애플의 강점은 소비자가 '시스템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 없이 자신의 컴퓨터로 하고자 하는 무엇에 집중하게(그 대신 비싼 가격이라는 댓가는 지불해야 한다) 해 주는 것이고, 단점은 소비자로 하여금 시스템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애플이 '소비자 경험'을 판매하는 기업이지 단순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묶어 파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이유로 국내 대기업들 - 삼성을 비롯해서 - 이 애플 아이폰에 대응하는 모습은 상당 부분 잘못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애플 아이폰보다 삼성의 최신 스마트폰들(옴니아2를 비롯하여)이 하드웨어 성능이 좋다는 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제품이 사용하기 편리하며, 더 향상된 '소비자 경험'을 줄 수 있는가가 이 싸움터에서의 승리 방식인 것이다. 애플은 이 점을 계속 중시하면서 싸운 기업이었다. 애플의 전통적인 전장(戰場)은 퍼스널 컴퓨터 시장이었으며, 여기에서 이 방식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이라는 싸움터로 옮기자 이 방식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제 애플은 스마트폰의 전선을 PC시장, 노트북 시장, 전자책 시장 등 전혀 다른 것처럼 보였던 싸움터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기존의 기업들은 애플의 전선 확장 전술에 끌려가면서 각 전선에서 싸우기에만 급급하다. 이래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애플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는 방식의 싸움으로 적들을 유도하는데 여기에 끌려다니는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구글은 어떠한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구글은 더 넓은 범주에서 이 두 기업들과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측면에서 구글은 애플의 전쟁 방식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구글은 'Don't be evil'이라는 철학을 가진 기업이다. 검색에서 출발하여, 월드와이드웹을 기반으로 기존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들이 잠식하고 있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리가 컴퓨터로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 웹 서핑을 하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메신저를 통해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구글은 이 모든 일들을 웹 위에서 가능하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사용자의 시스템, 플랫폼에 관계 없이 표준이 정해진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동일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애플의 방식과 유사한 접근이지만 한 단계 고차원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이다. 애플의 방식은 너무 적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애플이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을 위해서는 애플 하드웨어를 이용해야만 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소비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애플의 퍼스널컴퓨터 시장에서의 낮은 시장 점유율의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반면 구글은 훨씬 친숙한 브라우저 상의 월드와이드웹을 이용한다. 모든 사용자가 이미 보유한 플랫폼에서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다.

구글이 공개와 개방이라는 철학을 지지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구글이 이용하려는 플랫폼에 있다. 월드와이드웹은 제정된 표준을 가진 플랫폼이다.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에서 표준을 개발하고 제정하며 모든 브라우저들은 이 표준에 맞추어 제작된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퍼스널컴퓨터에는 브라우저가 설치되어 있다. 구글은 애플처럼 사용자들에게 자사의 플랫폼을 강요할 필요도 없으며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악몽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플랫폼의 경우의 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 아이디어는 논리적으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인 듯 하지만 대부분의 창조적 발상과 마찬가지로 최초로 생각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상황을 다시금 전쟁으로 비유하면 구글은 또 그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싸움 방식으로 애플과 전선을 형성하려는 것이다. 이미 몇몇 부분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제대로 싸우는 방식이다. 국면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하고 상대를 내 호흡에 따라오게 만드는 것 - 승패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싸울 때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상대방의 방식을 따르면서 싸우는 방식보다는 높을 것이다.

우리가 자문해야 할 것은 과연 구글이 표준을 따르기만 할 것인가이다. 지금은 웹 표준을 따르는 것이 구글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방식이다. 표준과 개방이라는 구호를 통해 비표준과 폐쇄적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다른 기업들에게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대다수의 이용자가 구글로 문서를 작성하고, 쥐메일로 메일을 받고 보내며, 구글톡으로 채팅을 하고, 유튜브와 피카사를 이용하는 때가 온다면 어떠할 것인가? 그때는 구글이 표준을 제시하는 영향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몇 가지 안심이 되는 사실은 구글에 의해 공개와 개방의 철학이 많은 사용자들에게 전파되고 있으므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해도 사용자들이 좌시하지 않으리라는 점과 '악해지지 말자'라는 구글의 철학이다. 기업의 철학은 잡스가 말한 것처럼 단순한 헛소리가 아니다[각주:1]. 비슷해 보이는 기업도 기업의 철학 내지는 사명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해지지 말자'와 같은 철학을 가진 기업이 성공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간혹 배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P.S.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대해 떠오르는 것들을 그냥 써본 것입니다. 좀 두서없긴 해도 너그러이 읽어주시고 다른 의견들도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네요

  1. 잡스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외부를 인식해서 한 발언일 것이다. [본문으로]